순천 청년들의 위트 가득한 문화생활

우리는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합니다

글·사진 | 심민아 작가 사진제공 | H.M.POD

‘별밤’ 시그널 음악에 가슴이 설레고, 교실에서 몰래 라디오를 듣다가 ‘키득키득’ 웃음을 참느라 입을 틀어막았던 기억이 머리를 스친다.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추고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공테이프에 녹음하고, 앞뒤로 돌려 듣다가 테이프가 늘어지기 일쑤였다. 화면에 집중해야 하는 유튜브 영상에 익숙해지다 보니, 잠시 잊고 지냈다. 나는 라디오 세대였고, 귀로 듣는 오디오 콘텐츠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간질간질한 아날로그 감성을 끄집어내준 건, 다름 아닌 순천의 청년들로 이루어진 ‘하마사자 팟캐스트 방송국(H.M.POD)’이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기차 안, 귀에 이어폰을 꽂고 목소리로 먼저 마주했다. 진행자들이 쉴 틈 없이 주고받는 티키타카에 덩달아 웃음이 터졌고, 반려동물 보호와 환경 문제에 대해 날을 세우고 말할 땐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과 유튜브에 친숙한 MZ세대가 만든 오디오 콘텐츠라니, 그 시절의 설렘을 다시 느끼고 싶은 기대감으로 순천을 찾았다.

01. 방송 10분 전, 부스는 적막이 흐를 정도로 조용하다. 톰젤다 집사(수연)는 방송 전부터 썰을 풀면 정작 방송이 재미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방송 시작 전, 게스트와 대화 없이 큐시트만 보고 있다. ⓒ심민아 작가
02. 영상 콘텐츠는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집중해야 하지만, 팟캐스트는 시선을 빼앗지 않아 다른 일을 하면서 동시에 즐길 수 있다. H.M.POD 방송은 아이폰의 기본 앱 ‘팟캐스트’ 또는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에서 ‘팟빵’ 어플을 다운받은 후 청취할 수 있다. ⓒ심민아 작가

순천에 작은 ‘혁명’을 일으킨 ‘혁&명 형제’

8년 전, 김도혁, 김도명 형제가 골방에서 노닥거리던 사적인 팟캐스트가 그 시작이었다. 핸드폰으로 녹음해 음질도 썩 좋지 않았다. 그러다 점점 판이 커졌다. 우연한 기회에 순천영상미디어센터의 전문가로부터 방송 장비를 조작하는 엔지니어 일과 방송 진행 스킬을 배우게 됐다. 체계적으로 방송의 틀을 갖추게 된 건, 2018년 무렵이다. 그 해 6월 초, 순천 시민들의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생활문화센터 영동1번지’가 개관하면서 녹음 부스를 활용하게 됐다. 지근거리에 ‘문화의거리’가 있어 자연스럽게 순천 지역 예술가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문학과 예술에 대해 논하면서 서서히 방송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지역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던 순천 토박이 ‘톰젤다 집사(수연)’가 합류해 탄탄한 3인 체제로 팀이 재정비됐고, 방송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03. 김도명 PD와 톰젤다 집사(수연)는 ‘아’ 하면 ‘어’하는 사이다. 눈빛만 봐도 서로 무얼 원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신뢰가 두텁게 쌓였다. ⓒ심민아 작가
04. 이름 때문에 종종 오해를 산다. 혁명 형제가 만든 ‘혁명정신’은 과격 단체도 아니고 이념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이들이 펼치는 ‘빨대혁명’, ‘바바바 스티커’ 같은 프로젝트는 완고한 인식의 틀을 깨뜨리는 혁명적인 일이다(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김도명 씨, 그 옆이 김도혁 씨). ⓒH.M.POD

톰젤다 집사(수연) | 사전에 얘기된 건, 30분 정도 말하고 빠지는 거였는데 방송 첫날, 시작부터 끝인사까지 하게 된 거예요. 제가 생각보다 ‘관종’이었나 봐요. 재밌더라고요. 고정 멤버가 된 후 맡게 된 게스트 섭외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어요. 얼굴 노출이 되지 않아 대부분 부담을 느끼지 않았죠. 필명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도 한몫했고요. 탐나는 게스트에겐 목소리 변조도 시켜줄 수 있다고 농담 섞어서 말을 하죠.

PD(김도명) |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남성 진행자와 남성 게스트가 진행하던 칙칙한 ‘남탕 방송’이었어요. 여성 진행자가 투입되고 나서 방송이 한결 밝아졌죠. 처음엔 형과 잡담이나 하려고 만들었어요. 최소한 파일을 자르고 붙이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엔지니어 일을 배웠어요. 저는 말하는 건 젬병이고 형이 말을 워낙 잘해서, 각자 잘하는 걸 하기로 했어요. 저와 형(김도혁) 이름의 마지막 글자(혁과 명)에, ‘그들의 생각’이란 의미를 더해 ‘혁명정신’이라고 팀명을 정했어요. 강렬하고 전투적인 이름 때문에 추진하는 프로젝트도 뭔가 더 ‘있어 보이죠’. 혁명정신이 일으키는 ‘정원혁명’이라던가, 일회용 빨대 사용을 자제하는 ‘빨대혁명’이 그렇습니다.

05, 05-1. 스마트폰으로 녹음하던 골방 시절부터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청년들을 향한 ‘열정’이다. 김도명 PD는 청년들의 고민을 외면하지 않고 소통의 창구 같은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심민아 작가
06, 06-1. 방송에서 말할 소재가 떨어지는 게 가장 두렵다는 톰젤다 집사(수연)는 천생 방송인이다. 작은 에피소드라도 생기면 기록해두는 버릇이 있다.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선지, 한 시간 남짓 사전 녹음을 하면 편집이 거의 없을 정도다. ⓒ심민아 작가

그러고 보니 ‘하마사자 팟캐스트 방송국(H.M.POD)’이란 이름도 어딘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방송국 입구엔 어른 키를 훌쭉 넘는 하마사자 캐릭터 입간판이 서 있고, 벽면엔 디자인 회사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다양한 하마사자 굿즈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김도명 PD를 바라보자, 조금 맥 빠지는 이야기라며 수줍게 입을 연다.

“혁명정신의 ‘초성(ㅎㅁㅈㅅ)’을 보고 누군가 ‘하마사자?’라고 흘리듯 말했고, 일순간 웃음바다가 됐어요. 방송에 출연한 한 작가(애플슬기)가 그걸 놓치지 않고 ‘하마’면서 ‘사자’인 세상 유일무이한 동물을 그려주셨죠. 평소 저희 팟캐스트를 듣는 분들에게는 익숙한 애플슬기 님의 작품인데, 그분은 우리가 사과할 일까지 대신 ‘사과’해 주시는 분이라 애플이란 특별한 닉네임을 붙여드렸어요. 그렇게 누군가의 우스갯소리로 ‘하마사자 팟캐스트 방송국’이 탄생됐어요. 대부분의 방송국 이름이 영어로 되어 있고, 조금 더 편하게 부르기 위해 약자(H.M.POD)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마사자의 탄생 비하인드에 실소가 터졌지만, 사실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이들의 엉뚱한 상상력은 여전히 여기저기서 빵빵 터지는 중이다.

07. ‘혁명정신’의 초성으로 탄생한 ‘하마사자 팟캐스트 방송국(H.M.POD)’. 초창기 로고는 디자인이 굉장히 직관적이다. ⓒH.M.POD
08. 귀여운 하마사자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 반팔티셔츠와 후드티셔츠, 키링, 그립톡, 펜 등 다양하게 제작됐다. ⓒH.M.POD

H.M.POD의 첫 방송은 ‘순천통’임을 자부하는 혁명정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위키순천’이었다. 위키백과나 나무위키처럼, 순천의 모든 것을 다루는 대백과 같은 팟캐스트라는 뜻을 담고 있다. 순천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방송으로 순천 관련 게스트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다. 지극히 순천 친화적인 팟캐스트로, 지난해 ‘순천시청년도전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09. 순천 지역을 대표하는 팟캐스트 ‘위키순천’. H.M.POD의 뿌리가 되는 방송으로, 혁명정신이 진행하고 있다(위키순천 www.podbbang.com/channels/1768271). ⓒH.M.POD
10. ‘소소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다룬 팟캐스트 ‘소.우.주’. 광활한 우주에 바오밥 나무처럼 생긴 베지플래닛 행성과 고양이 젤리 모양의 묘더테레사 행성이 둥둥 떠 있고, 하마사자가 사는 팟캐스트 행성에선 H.M.POD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소우주 www.podbbang.com/channels/1781557). ⓒH.M.POD

PD(김도명) | 순천에 살다보니 자연스레 형과 순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러다 순천 지역 팟캐스트가 됐어요. 순천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팟캐스터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또 하나의 방송이 만들어졌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방송하고 싶지만 다들 본업이 있어 쉽지 않더라고요. ‘위키순천’은 순천 소식을 우리 방식대로 전하고, 지역 상황에 맞게 프로젝트 방송도 진행하는 팟캐스트예요. 지난해엔 순천 소식지 기자님을 초대해 순천 소식지를 심층적으로 파헤치고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어봤어요. 순천에 정착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기도 했고요. 올해는 대선을 앞두고 관심 밖에 있는 군소 후보들을 소개했는데, 자체 최고 청취율을 기록했습니다. 오는 6월에 있을 지방선거도 다룰 예정이에요.

방송이 회를 거듭할수록 혁명정신의 관심사는 내 주변의 이야기를 넘어 환경 보호와 사회 문제로 번져갔다. 지난해 역사, 동물, 건강, 문화 등 다양한 콘텐츠를 아우르는, 혁명정신의 또 다른 팟캐스트 방송 ‘소.우.주’가 만들어졌다. ‘소소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다루는 팟캐스트라고 해서 ‘소.우.주’라고 이름 지었고, 소우주를 진행하는 팟캐스터들을 ‘우주인’이라 칭하며, 구독자를 우주인의 반댓말인 ‘지구인’이라 부르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 초성어와 약어에 능한 MZ세대의 문화적 코드를 팟캐스트 곳곳에 깨알같이 심어놓았다.

지난해 12월에는 소우주 방송을 진행하는 팟캐스터들이 모여 ‘소우주미디어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로컬 론칭 전시 <2021 소.우.주>를 개최했는데, ‘소우주미디어협동조합’ 사업자등록증을 복사해 걸어놓고, 그간의 성장 과정과 하마사자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팟캐스터(우주인)들의 에피소드가 담긴 웹툰을 보여주고, 주요 팟캐스트를 청취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2021년에 수고한 팟캐스터들에게 기발한 이름의 상을 만들어 수여하는, 우리끼리 어워즈도 열었다.

11. ‘소우주미디어협동조합’ 설립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전시 『2021 소.우.주』. ⓒH.M.POD
12. ‘소우주 어워즈’에선 지난해 수고한 소우주 팟캐스터들에게 기발한 이름의 상을 수여했다. 각자의 개성과 전문성이 담긴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H.M.POD

PD(김도명) | 혁명정신과 함께 방송하는 팟캐스터들이 연합해 지역을 대표하는 미디어그룹을 만드는 게 꿈이었어요. 지난해 목표를 이룬 거죠. 2020년까지는 혁명정신에서 소우주 팟캐스터들을 직접 교육시키고 방송에 투입시켰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우리 색채가 묻어났어요. 그런데 지난해부터 완전히 자율로 맡기고 업로드만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송마다 팟캐스터의 개성이 돋보이고 다채로워졌죠. 우린 플랫폼으로서의 기능만 수행하는 셈입니다. ‘위키순천’이 순천에 사는 사람이 전하는 순천 이야기라면, ‘소.우.주’는 순천에 사는 사람이 보편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방송의 차이점이라면, 소.우.주는 국내 최대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에서 송출되고, 위키순천은 애플 팟캐스트와 팟빵을 통해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우.주’의 팟캐스트 5

채식생활의 팁을 알려주는 ‘베지플래닛’

여수의 비건 카페 운영자가 진행하는 ‘베지플래닛’은 채식생활뿐 아니라 비건인이 지향하는 ‘제로웨이스트’와 같은 친환경 생활, 동물권 문제 등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순천에서 채식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던 만큼, 청취자의 공감을 얻지 못할까봐 내부적으로 고민을 안고 시작한 방송이다.

올바른 운동정보를 주는 ‘네 멋대로 운동하지 마라’

순천시체조협회장과 사무국장이 진행하는 ‘네 멋대로 운동하지 마라’는 잘못된 방법으로 운동하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고자 기획됐다. 운동 시 동작을 직접 보여주는 게 일반적이라, 음원 콘텐츠로 구현하기 어렵지 않겠냐는 걱정 어린 시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체조협회 회원들의 다양한 운동 에피소드는 뜻밖에 재미 요소로 작용했다.

문화 콘텐츠 리뷰 방송 ‘저.종.리’

‘저품격 종합문화예술콘텐츠 리뷰 방송’의 줄임말인 ‘저.종.리’는 방구석 평론가인 진행자들이 영화와 책, 드라마, 연극 등 문화 콘텐츠를 리뷰하는 방송이다. 전문 평론가가 아니기에 ‘저품격’이란 이름을 붙였고, 의도치 않게 현재 시즌제로 운영하고 있다.

냥덕들을 위한 고양이 찬양 방송 ‘묘더테레사’

소우주의 팟캐스트 중 두 번째로 오래된 방송으로 장집사(장영재) 님과 함께 고양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혁(김도혁) 님이 ‘고양이계의 마더 테레사’라는 의미로 ‘묘더테레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여순항쟁을 주제로 하는 ‘우.그.날’

‘우리가 몰랐던 그날의 이야기’의 약자인 ‘우.그.날’은 우리가 사는 순천과 인근 지역 여수에서 일어난 여순항쟁을 다룬 16부짜리 방송이다. 2020년부터 여순항쟁을 조심스럽게 다루긴 했는데, 지난해 근현대사 전문가 주철희 박사님을 모시고 본격적으로 역사 팟캐스트를 진행했다.

톰젤다 집사(수연) | 소.우.주는 우리의 마이너 감성이 그대로 담겼어요. ‘이걸 팟캐스트로 한다고?’라는 생각이 드는 주제를 선정합니다. 예를 들어 여순항쟁을 다룬 방송 ‘우.그.날(우리가 몰랐던 그날의 이야기)’에서는 주철희 박사님을 모시면서 지금껏 어느 방송국에서도 이런 시도는 없었다는 평가를 할 정도로, 박사님께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들려달라고 요청드렸더니,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으니 그만 좀 빼먹어’라고 말씀하셨어요(웃음). 그만큼 눈앞에 그려질 정도로 여순항쟁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고 자부합니다. 또 다른 역사 팟캐스트를 제작하기 위해 다른 분야의 역사 전문가를 찾는 중이에요.

PD(김도명) │ 재작년에 피드백이 없던 팟캐스트 ‘저.종.리(저품격 종합문화예술콘텐츠 리뷰 방송)’가 폐지됐어요. 그런데 방송에 초대된 김자네(Kim Jane) 님이 갑자기 저종리의 행방을 묻더니 “제가 해봐도 될까요?”가 된 겁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시즌1’ 진행자에게 허락을 구하고 ‘시즌2’를 시작하게 된 거죠. 사실 김자네 님은 새로 개설될 팟캐스트 진행자로 섭외한 분이었어요. 새 코너를 그녀가 맡지 못해 아쉬웠지만 누군가 ‘시즌1’을 듣고 있었다는 사실과, 구독자가 우리의 팟캐스터가 되어 폐지된 방송을 ‘부활’시켰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둬, 아쉬움은 잠시였습니다.

13. 팟캐스트 ‘저.종.리’를 진행하는 우주인 김자네 씨가 책을 짚고 서 있는 모습을 유쾌하게 표현했다. 그녀는 폐지된 팟캐스트 ‘저.종.리’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시즌2’를 부활시켰다. 워킹맘이라 잠시 방송을 쉬고 있다. ⓒH.M.POD
14. 고양이 덕후를 위한 냥냥한 방송 ‘묘더테레사’는 팟빵에서 ‘소우주’를 검색해 들을 수 있다. 고양이 탈을 쓴 집사 우주인들이 진행하는 모습을 담았다. ⓒH.M.POD

바바바! ‘프로 불편러’의 세상 바꾸기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것 외에도, 지역 주민들의 문화적 요구를 충족시키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촉을 세우고 있다. 그러다 2019년 지역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문화가 있는 날 ‘지역문화우리’ 사업에 3년간 연속 선정되면서, 팟캐스트 특성을 활용해 다양한 문화 사업을 펼치게 됐다. 첫해인 2019년에는 청년들의 여러 목소리를 담는 팟캐스트 ‘청년? 나의 이름은?’을 기획했다. 매달 직업, 연애, 결혼, 가정 등의 주제를 정해 게스트(적게는 4명, 많게는 10명)를 초대하고, 청년들의 고민을 듣고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았다. 허석 순천 시장을 초대해 창업리그, 창업보육센터 등 순천시가 펼치는 청년 정책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순천 옥리단길의 핫플레이스 ‘옥천귀뚜라미’를 이끄는 31세 청년사업가를 만나 옥리단길 신화를 이룬 성공 비결에 대해 들어봤다.

2020년에는 팟캐스트를 양성하고 독립시키는 ‘청년문화연대기, H.M.POD’ 사업을 추진, 전년도에 느낀 한계(우리끼리 진행하고 게스트만 많이 섭외한)를 깨닫고, 다양한 콘텐츠를 송출하는 방송국 설립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다. 팟캐스터를 공개 모집하고, 모집된 팟캐스터를 교육해 실전에 투입시켜 최소 3개 이상의 팟캐스트를 녹음해 업로드한 것. 2021년에는 밑그림을 바탕으로 ‘하마사자 팟캐스트 방송국’을 브랜딩하는 ‘로컬론칭, H.M.POD’을 추진, 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했다. 혁명정신의 마스코트 하마사자에 의미를 부여해 스토리로 발전시키고, 우주인 캐릭터와 소우주 세계관을 만들어 브랜딩했다. 또 다양한 성격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 공개 모집이 아닌 직접 섭외하는 방식으로 바꿔, 재능 있는 팟캐스터를 발굴하고 새로운 팟캐스트를 개설했다.

15. 혁명정신의 캐릭터 ‘하마사자’와 방송을 진행하는 팟캐스터 ‘우주인’, 팟캐스트 청취자인 ‘지구인’을 스토리로 만들어 브랜딩했다. ⓒ심민아 작가
16. 녹음부스 벽면 책장엔 혁명정신의 두 번째 기록물 『팟캐스트, 청년? 나의 이름은?』이 꽂혀 있다. 표지엔 H.M.POD를 이끄는 멤버들을 특징에 맞게 동물 캐릭터로 그려 넣었다. ⓒ심민아 작가
17. ‘하마사자’와 함께 포즈를 취하는 김도명 PD와 톰젤다 집사(수연). H.M.POD는 하마사자가 사는 팟캐스트 행성을 뜻한다. ⓒ심민아 작가

PD(김도명) │‘청년? 나의 이름은?’은 20부로 진행한 팟캐스트라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끝내고 보니 ‘청년백서’를 만든 느낌이랄까요. 마침 저희의 첫 독립출판 서적이 출간돼 여러모로 의미 있었어요.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여러 직업군과 다양한 나이대의 청년들이 갖는 고민과 생각을 알 수 있다고, 정치인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습니다.

서로에 대한 단단한 믿음과 차곡차곡 쌓여진 올바른 생각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궁금증은 대화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이들은, 나고 자란 ‘순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고, ‘진정성’ 있는 방송으로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들과 소통하길 원했으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각자 성격이 제각각이지만, 특별히 환경과 사회 문제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가 이들을 단단하게 결집시켰다. 일상에서 느끼는 다양한 문제를 인문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해결 방안을 찾는 일에 꾸준히 관심을 보여왔다. 누군가 주제를 던지면 웃음기가 싹 걷히고 열띤 토론에 들어간다. 멤버 한 명이라도 아쉬움을 느끼면 추진하지 않는다. 소우주미디어협동조합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도명 PD는 편집을 맡아 방송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이 거의 없지만,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게스트들의 연결망 역할을 자처하는 톰젤다 집사(수연)는 환경과 동물권에 대한 생각의 깊이가 남다르다.

공공시설의 표지판에서 ‘애완동물’, ‘장애우’처럼 잘못 표기된 단어를 마주할 때면 어딘지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때마침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지원하는 ‘삼삼오오 청년 인문실험’ 사업에 선정돼 인식 개선을 위한 ‘바바바 스티커’ 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단어를 바꿔 인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불편한 스티커’라는 뜻의 ‘바바바 스티커’는 잘못된 단어를 찾아 적절한 단어로 바꿔보자는 취지의 인문실험 캠페인.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혁명정신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혁(김도혁)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단어에 불편함을 느끼는 ‘바바바 불편러’를 모집했어요. 잘못 쓰인 단어를 찾으면 ‘바바바 스티커’와 함께 사진을 찍어 이를 알렸죠. 미국의 새로운 장애인 마크를 만든 사라 핸드렌(Sara Hendren)의 소신 있는 행동은 ‘바바바 스티커’ 캠페인의 원동력이 됐어요. 그녀는 직접 휠체어를 밀고 나가는 역동적인 모습을 그려 기존의 수동적인 장애인 마크 위에 붙여 나갔죠. 뉴욕시는 공공물 훼손이라고 반대했지만, 결국 46년 만인 2014년에 공식 인정하고 그녀가 고안한 새로운 마크로 변경했습니다.

18. ‘바바바 스티커’는 ‘단어를 바꿔 인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불편한 스티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잘못 사용된 단어를 찾아 적절한 단어로 바꿔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캠페인이다. ⓒH.M.POD

10주 프로젝트로 진행된 ‘빨대혁명’도 일상의 작은 행동에서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는 빨대혁명은 10명의 빨대혁명가들이 대나무빨대, 파스타빨대, 유리빨대, 밀빨대 등 다회용 빨대를 사용하고 꼼꼼하게 평가하는 인문실험으로, 각각의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했다.

19.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자제하는 운동인 ‘빨대혁명’. 대나무빨대, 파스타빨대, 밀빨대 등 10가지 대체 빨대를 체험하고 깐깐하게 평가하는 프로젝트였다. ⓒH.M.POD

PD(김도범) │저희가 그렇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저조차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참여하는 사람들도 만족해했고요.

혁(김도혁) │현재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분야는 이론의 실제 적용이 이뤄지는 실천적 활동입니다. 우리의 문제의식에 기반한 인문 활동이 어떻게 실제 생활에서, 그리고 시민들에게 공감을 얻을까, 고민하면서 프로젝트를 기획합니다.

20~23. 벚꽃이 한창인 동천의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순천만 습지에 발이 닿는다. 이 물길을 따라 4월 말부터 ‘지역문화콘텐츠특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생태 캠페인 ‘순천생태문화조각맞추기’를 진행할 예정이다. 곧 달라질 동천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해보았다. ⓒ심민아 작가

2021년 ‘지역문화우리’ 사업은 종료됐지만, 운 좋게 올해 ‘지역문화콘텐츠특성화’ 사업에 선정돼 오랜만에 부스를 벗어나 바깥 활동을 할 명분이 생겼다. 그 일환으로 생태와 환경이 뛰어난 지역적 특성에 맞춰 생태 캠페인 ‘순천생태문화조각맞추기’를 4월 말부터 진행할 예정이다. 순천 도심을 가로지르는 ‘동천’이라는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순천만 습지가 나오는데, 예전엔 동천변 데크에서 공연이 활발하게 열렸다. 잘 정비된 듯 보이지만, 중간중간 유휴공간이 있어 이런 곳들을 발굴, 발전시켜 여러 활동이 이뤄지도록 만들 계획이다. 순천 시민들의 열린 쉼터이자 일상의 문화공간으로, 다시 돌려줄 방안을 찾느라 몸은 고달프지만 마음만은 행복하다.

혼자 들어도 충분히 행복한! 충분히 연결된!

방송을 통해 지역 활동가와 예술가, 청년문화기획자들을 알게 된 것이 이들의 가장 큰 자산이다. 그렇게 인적 네크워크가 쌓여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단체나 지자체에 이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향동 문화의거리에서 열린 『은행나무 아래로』 축제에 초대돼 공개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실내에서 녹음 방송만 해오던 터라 야외에서 실시간 방송을 진행하는 건, 큰 도전이었다. 골목골목 예술가의 공방과 갤러리, 카페가 늘어선 아름다운 동네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상권이 죽어 있었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상인회에선 각종 경품과 상품권, 할인쿠폰을 통 크게 내놓았고 공방들도 열 일 제쳐두고 플리마켓을 열었다.

톰젤다 집사(수연) │50개가 넘는 상점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어 생방송 중에 상점명을 여러 번 노출했어요. 어느 정도 감안했지만 광고성 콘텐츠라는 이유로, 그날 방송이 통째로 삭제돼 다시는 들을 수 없는 희귀 방송편이 됐죠. 지역 축제 행사는 전문 MC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게 보통인데, 2명의 진행자가 앉아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모습이 오히려 신선하게 비춰졌나 봐요. 그게 계기가 돼 지난해 ‘순천에코아트페어’에서도 비슷한 형식으로 공개방송을 진행했어요. 아트페어에 참여한 작가와 총괄 감독을 인터뷰하고, 전시를 보면서 라디오처럼 팟캐스트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죠.

24. 지난해 향동 마을 축제 『은행나무아래로』에 이어 『순천에코아트페어(EAT)』 에서도 공개방송을 진행했다. 아트페어에 참여한 작가들과 총괄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H.M.POD

시간이 지나면서 혁명정신의 방송 노하우와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차츰 생겨났다. 지난해 10월에는 미래 팟캐스터를 양성하는 ‘구례라디오스타’ 수업을 열기도 했다.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방송 기획안부터 대본 작성 요령, 녹음까지 배울 수 있어 개인 미디어에 관심 있는 이들에겐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됐다. 혁명정신이 8년간 걸어온 족적은 2권의 기록물로 새겨졌다. 첫번째 책 『혁명정신과 14명의 하마사자 팟캐스트 153일의 기록』엔 그동안 진행한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고, 두번째 기록물 『팟캐스트, 청년? 나의 이름은?』엔 팟캐스트에 달린 댓글과 청취자의 댓글을 소개하는 내용을 담았다. 방대한 양의 댓글은 청취자가 많다는 방증 아니냐고 묻자, 극구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PD(김도명) │많은 구독자를 자랑하는 채널은 아니지만 열혈 청취자들이 계십니다. 팟캐스트를 듣는 이들은 우리처럼 마이너한 성향이라 로그인 없이 비회원으로 듣거나 댓글에 조금 인색해요. 그중 닉네임 ‘아르세닉1’이라는 순천 출신의 애청자가 있는데, 고향인 순천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가 있어 무척 신기해하셨어요. 방송 초기인 2014년부터 팟캐스트를 듣고 꾸준히 댓글도 달아주셨죠. 우리에게 없는 MP3 파일을 소장하고 있고, 방송의 흑역사까지 알고 있는 찐팬이죠. 2020년 2월 2일, 명절을 맞아 고향을 방문한 김에 게스트로 모셨어요. 실존하는 몇 안 되는 팬(?)을 만나는 역사적인 날이라 방송일을 생생히 기억해요. 대본 읽듯이 질문에 술술 답하는데, 순천에 계셨다면 ‘고정 출연각’인데 아쉽죠.

25. 김도명 PD는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문화의 힘으로 지역을 변화시키고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라면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야외 활동을 싫어하지만 최근 캠핑과 등산에 부쩍 관심이 생겼다. 이들의 관심사는 곧 팟캐스트 신설로 이어지기도 한다. 기대하시라. ⓒ심민아 작가
26. 새 사무실로 이사 온 지 이제 막 한 달이 됐다며,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에서 1층으로 오게 돼 업무환경이 좋아졌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제 게스트를 모실 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심민아 작가

코로나19 장기화로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고 섬처럼 혼자 지내게 되면서, 나를 위로해줄 누군가의 목소리가 절실해졌다. 모든 모임이 온라인 화상회의로 대체되면서 ‘줌 피로(Zomm Fatigue)’도 상당했다. 눈을 뜨면서부터 접하는 시각적 자극으로 인해 쉬이 잠들지 못하던 중, 내 귀에 캔디처럼 잔잔히 속삭여주는 H.M.POD은 그 시절 디제이들의 역할을 거뜬히 해낸다. 모두가 영상에 주목할 때 혁명정신은 음성을 택했다. 오디오 콘텐츠가 갖는 차별성이 분명히 있다고 믿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고 대중의 관심은 부담스러운 평범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기에는 팟캐스트만한 좋은 음성 매체가 없다.

PD(김도명) │디지털이 시대의 상징이긴 하지만 아직 라디오 청취자는 존재하잖아요. 손으로 바쁘게 일하면서 귀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분들이라거나. 저도 고등학교 때 공부하면서 라디오를 듣곤 해서, 오디오 콘텐츠는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가끔 공개방송에서 실물과 목소리를 비교하고 많이들 실망하십니다(웃음).

해야 할 건 많고 시간이 부족할 때, 귀만 열어두면 얼마든지 멀티태스킹이 가능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기본적으로 멀티태스킹에 능하고,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며 사생활이 존중 받길 원하는 MZ세대의 성향은, 귀에 이어폰을 꽂는 순간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되는 팟캐스트의 특성과 들어맞는다.

톰젤달 집사(수연) │스마트폰으로 팟캐스트를 듣거나, 웹툰을 가상화폐 ‘쿠키’로 굽고 결제하는 것도 MZ세대의 다양한 문화생활 중 하나라고 봅니다. 팟캐스트처럼 혼자 즐길 수 있는 것도 충분히 고급 문화, 행복한 문화적 삶이라고 생각해요. 팟캐스트는 누군가와 함께 듣는 방송이 아니에요. 이어폰을 끼고 혼자, 그리고 몰래 들으세요. 우리 비밀스럽게 계속 만나요.

마지막으로 건넨 달콤한 인사에 봄날 햇살처럼 마음이 화사해졌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구독’과 ‘좋아요’로 기꺼이 화답했다. 귀로 듣는 오디오 콘텐츠에 한동안 빠져 지낼 이유가 생겼다.

심민아
작가
여행 에디터로 국내외 많은 여행지와 공간들을 기록하며 사진으로 담아왔다. 여행하며 사람들, 그들에게서 받은 긍정적 에너지는 다시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문화의 힘으로 다시 태어난 재생공간에 대한 관심이 커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