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다스리는’[自治] 지역문화 어떻게 가능한가
문화향유 정책에서 시민 참여 정책으로

글 | 정상철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재관리학과 교수 및 문화영향평가 자문위원
지역문화, 어떻게 꽃 피는가

지역문화는 무엇인가? 지역문화와 대척점에 있는 글로벌 문화와 대비하는 것이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 지역에서나 누구나 알고 접하는 것이 글로벌 문화라고 한다면, 지역문화는 특정한 지역에서 형성되어 통용되는 문화로 한정 지을 수 있다. 수도인 서울도 울릉도도 지역문화가 있으며, 지역문화 중 세계화된 것은 글로벌 문화가 될 것이다. 문화의 속성도 그렇지만 지역은 제각각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지역문화는 ‘다양성’과 ‘장소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최근에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역 공동체가 자율적으로 문화를 만들어 나가도록 중앙정부에서 지원하는 ‘문화 분권’과 ‘문화자치’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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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지역문화 생태계 구축 통합 운영사업 워크숍 현장

이러한 흐름은 지역의 문화를 발굴하고, 진흥하고, 확산하는 데 필요한 법적, 조직적, 자원적 체계를 구축되는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중앙단위에서는 2014년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을 통해, 광역 및 시·군·구 단위 지자체에서는 각종 조례를 통해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법적 체계가 마련되었다.

조직체계에서도 중앙정부에서는 문체부의 지역문화정책관에는 독립적인 문화예술 관련 부서와 광역 및 기초 문화재단이 설립·운영되고 있으며, 중앙과 지역을 연계하고 매개하는 지역문화진흥원이 있다. 자원체계에서도 지역문화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지역문화진흥기금 등 재정 자원이 마련되고, 지역문화예술 데이터와 실태조사로 각종 지역문화 정보 및 지식이 구축되고 있다. 위와 같이 법·제도, 조직, 자원 측면에서 지역문화진흥 체계가 정책적으로 종합화된 것을 5년마다 수립하는 것이 지역문화진흥 기본계획과 시행계획이다.

지역문화진흥 기본계획과 시행계획은 분권과 자치의 정신에 따라 지역의 이해 관계자가 참여하여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방향, 대상, 사업을 논의하고 협상하는 과정(process)을 위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그 결과물로서 지역문화진흥에 대한 청사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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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지역문화전문인력배치 사업 프로젝트:영천문화원 /
2021 지역형 생활문화 활성화 시범사업 협력워크숍

왜 지역문화를 진흥시켜야 할까? 지역에서 문화가 개인의 삶을 풍유롭게 할 뿐 아니라 지역 발전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역문화의 힘일 것이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은 자본, 인력, 기술 등 발전을 위한 자원이 열악하다. 대도시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분야가 바로 문화이다. 문화 그 자체의 기능과 역할을 기본으로 하면서 또한 지역발전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지역문화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문화의 내재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를 따로 볼 것이 아니라 서로 연계·통합화함으로써 지역 내 문화의 덩치(pie)를 키우고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는 지역발전전략에서 문화의 역할이 주변에서 중심으로 탈바꿈되는 것이다.

무엇이 지역의 진짜 ‘역량’인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티아 센(Amartya Sen, 1999)은 ‘발전(development)’을 우리가 영위하는 삶과 자유를 증진시키는 것과 관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자유의 확장을 발전으로 보고 있는데 정치적 자유가 아니라 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역량(capability)을 갖춰가는 것을 자유의 확장 과정으로 본다는 점이다. 조직이나 개인이 하고 싶은 일들을 꿈꾸지만 그것이 선택지 밖에 있는 것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거나 부재하기 때문이다. 센의 용어를 빌려 표현하면 문화 자치와 분권이 이루어지기 위한 전제 조건은 지역에서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이 구축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문화를 통해 이룰 수 있는 실행 가능한 다양한 가능성이 실제 선택되어 실현되고, 자유가 확장되고, 지역에서의 삶이 풍유로워지는 발전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역량은 참여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평적/협력적 거버넌스의 구축이 긴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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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지역문화전문인력배치 사업 프로젝트: 임실문화원

앞으로 문화행정 측면에서는 지역의 권한과 자율성이 증대되고, 시민사회 측면에서는 문화향유라는 소극적 참여가 아닌 문화계획 수립-실행-모니터링과 평가의 과정에 지역 공동체가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적극적 참여가 요구된다. 작년 필자는 시·도 광역지자체가 지역문화진흥 시행계획을 수립하는 권역별 토론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문체부가 수립하는 지역문화진흥 기본계획의 방향을 참고하여 17개 시·도 광역단체가 자체 시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토론회에서는 계획을 수립하는 절차와 방식이 중앙에서 지방으로 하향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역의 요구와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 있었다.

시간적으로 기본계획이 먼저 수립되고, 이어서 시행계획을 수립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러한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기본계획과 시행계획 수립에 중앙-지방이 처음부터 충분히 참여하고 논의한다면 계획 수립의 선후는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참여라는 것이 지역 내에서의 참여뿐만 아니라 지역의 목소리를 중앙단위의 의사결정과정에 반영될 수 있는 협력적 거버넌스로 더욱 진화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문화 자치와 분권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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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시생활문화센터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주민들

지역문화 주체(조직)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지역 안에서 각 조직들이 서로 연결성을 확보하고 기능하는 실질적인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 중요하다. 2020년 말 기준 현재 17개 광역자치단체 모두 문화재단을 설립하였으며, 87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지역문화재단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중앙정부-광역시도-시군구가 수직 관계에서 수평 관계의 협력, 연계 가능한 구조로 재편하고, 지역 단위에서 실질적인 협력과 연계가 가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두 차례의 지역문화진흥 시행계획을 수립하면서 지역 단위의 지역문화협력위원회 운영의 활성화가 앞으로 중요한 과제라고 판단되었다. 문체부의 기본계획과 광역시도의 시행계획이 시군구 단위까지 촘촘히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광역시도의 시행계획 중 시군구와 연계 및 협력이 요구되는 안에 대해서 광역시도가 시군구에 협력을 요청할 수 있는 행·재정적 지원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서 광역시도와 시군구 간 정책 이슈별 라운드 테이블을 통해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의견 교환을 위한 정책실행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 이는 광역시도 단위의 지역문화협력위원회 형태를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지역문화협력위원회의 인적 구성은 지역문화와 관련한 이해관계에 있는 계층별, 직능별(행정, 연구, 예술 현장 등), 세대별 다양한 구성을 통해 대표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며, 지역문화협력위원회는 위상이나 인적 구성에 관한 별도 조례를 만들어서 독립성을 확보하고, 전문위원과 같은 실질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1994년 지방자치제가 국내에서 실시된 이후 지속적으로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체계가 양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이제는 법·제도, 조직, 자원 측면에서 양을 늘리는 것보다 질적으로 심화시키는 접근이 필요하다. 기존에 중앙정부-광역시도 간, 중앙정부-기초지자체 간 관계가 중심적이었다면, 향후에는 광역시도-기초지자체 간, 광역시도 간, 기초지체체 간 협력적 관계를 더욱 촘촘히 구축하는 정책설계가 요구된다. 또한 문화향유 중심의 문화정책에서 시민의 참여가 중요한 정책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된다면 희망컨대 삼천리 방방곡곡에 지역문화의 꽃이 다양하게 만발할 것을 기대해 본다.

1) 지역문화진흥조례, 문화예술진흥조례, 생활문화진흥조례 등 지방정부는 다양한 자체 조례를 만들고 있다.
2) 아마티아 센(김원기 옮김), 『자유로서의 발전』, 갈라파고스, 2013.

정상철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재관리학과 교수 및 문화영향평가 자문위원
세계 속에 지역이 아니라 지역 속에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역이 중심이 되고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정책에 관심에 많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현재 한국전통문화대에서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에 대한 창의적 접근을 하는 프로젝트기반학습(PBL)을 다년간 수행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창의적 농촌경제의 성공 모델』(공저, 북코리아, 2017)이 있으며 다수의 지역문화 중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는 과제에 참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