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커뮤니티는 공통감각을 선물한다

글 |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코로나 시대 온라인과 비대면이 대세지만

얼마 전 지역에서 작은 축제를 메타버스 형식으로 진행했다. ‘게더타운’이라는 플랫폼을 활용했는데, 수개월 동안 축제를 함께 준비한 지역 주체들은 대부분 처음 경험하는 상황에서 신선함과 낯설음 사이에서 묘한 감정을 느낀 듯하다. 그동안 골목과 도서관, 시장에서 만났던 관계들이 광장에서 축제로 모여 함께 웃고 떠들던 모습이 사라지고, 가상공간에 마련된 마을을 낯설기만 한 캐릭터들이 채팅과 이모티콘으로 배회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거꾸로 우리가 함께 했던 축제는 무엇이고,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동네는 어떤 곳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동네 모습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동네 모습

모든 새로운 것은 다른 계기를 낳는 것처럼, 메타버스의 실험은 디지털문화의 일상화 가운데 온라인과 비대면의 경험을 어떻게 접근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좀 더 깊은 논의로 이끌어가고 있다. 동네활동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카카오톡 단톡방의 경우에도 상호 신뢰가 없는 경우에 여러 문제점과 갈등을 도출함으로써 한계를 드러내곤 한다.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지속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디지털 환경은 비교적 괜찮은 도구이지만 여전히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이처럼 커뮤니티 활동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은 도구로서 매체의 변화가 있을 뿐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편지와 같은 소통수단이나 대학 동아리방에 걸려 있던 ‘날적이’, PC통신 동호회나 싸이클럽과 미니홈피 등은 그 시대에 어울리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새로운 문화도 개인과 커뮤니티라는 그 관계성에 대한 반응으로 등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개인이 활동하는 계정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상호관계를 통한 일종의 커뮤니티 기능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분야에서는 일상화된 트렌드가 다양한 세대가 겹쳐 있는 지역사회에서는 여전히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기술 기반의 플랫폼들은 여전히 새로운 학습이 전제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다양한 격차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과 문명의 변화로 인한 ‘디지털 격차’ 논의는 그 자체가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대부분 기술 그 자체에만 집중할 뿐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나 영향력 등에는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커뮤니티라는 용어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과거의 커뮤니티가 기존 오프라인 중심의 관계성에 기반한 것으로 물질성을 갖고 있었다면, 오늘날 등장하는 커뮤니티는 물리적 관계보다는 취향이나 기호에 따른 일면적 혹은 추상화된 맥락에 따라 구성된다. 나아가 그러한 커뮤니티는 온라인 혹은 가상공간이라는 물질성에 기반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정서를 토대로 구성된다.

새로운 커뮤니티, 돈의 흐름에서 삶의 흐름으로
성북구 월곡2동 '삼태기마을'에서 '천장산 우화예술제'라는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성북구 월곡2동 '삼태기마을'에서 '천장산 우화예술제'라는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성북구 월곡2동 '삼태기마을'에서 '천장산 우화예술제'라는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19는 커뮤니티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표면적으로는 코로나19 이후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커뮤니티 활동이 축소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으나, 앞으로 그러한 활동이 얼마나 회복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점은 코로나19 이후 지역을 중심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커뮤니티가 다양하고 복합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역사회 내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

지역사회 내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

지금까지 지역사회에서 커뮤니티 활동이 가장 활발한 집단은 다양한 직능단체 중심의 봉사활동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주택의 입주자모임, 학부모회와 같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서 커뮤니티이다. 하지만 현재 지역사회에서는 다양한 취향과 자발적 동기를 갖는 커뮤니티가 급부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세대와 성별, 직업군이 활발하게 결합하고 있다는 점은 지역사회가 과거와 같은 특정 몇몇 집단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지역의 노인들과 청소년들이 함께 하는 극장지배인워크숍 '서서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지역의 노인들과 청소년들이 함께 하는 극장지배인워크숍 '서서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한 커뮤니티 활동의 사례에서 드러난 점은 지역예술가들의 삶에 있어서 좀 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영역으로 그들의 시선이 옮겨왔다는 점이다. 보편적인 모든 것에서 내가 살거나 활동하는 지역 현장으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시선의 변화는 대상과 공간의 변화를 넘어선다. 과거에는 돈의 흐름, 즉 사업과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대상과 공간이 이동했다면, 새로운 커뮤니티는 삶의 흐름에 따라 이동한다. 이때 예술가의 작업은 자신의 생각이나 관점을 실현하는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이 경험하는 공간과 맥락에 따른 실질적인 변화를 드러낸다. 동네 주민들을 만날 때에도 그들은 일시적인 프로젝트 작업의 대상이 아니라 일상의 관계가 된다. 목적이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만남의 시간들이 쌓이면서 활동과 작업에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커뮤니티의 발견이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예술가의 작업은 개인적이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이 홀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지역에서 활동을 경험하는 예술가들은 커뮤니티를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 그들의 작업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의 차원으로 움직인다. 자신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장소들이 자신의 작업과 관련된다. 그 공간에서 전시와 공연, 축제를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예술가이거나 활동가이거나 주민이다. 장르와 장르, 세대와 세대가 만나고 가로지른다. 공연과 미술, 설치와 영상이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고, 동네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예술가들이 갓 대학(원)을 졸업한 예술가들을 만나서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

만남은 존재의 부딪힘이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만남은 ‘사건’이 되지 못한다. 부딪힘으로서 사건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 장소에 흔적을 남긴다. 낡고 오래된 동네에 사는 늙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별일 없이’ 살아간다. 커뮤니티를 경험한 예술가들은 그들에게 사건을 경험하게 만든다. 그것도 일시적인 경험이 아니라 일상에서 함께 마주치는 동네 친구들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동네 커뮤니티는 특정한 목적을 갖는 것이 아니다. 외부에서 예산이 투입되어 만들어지는 커뮤니티가 아니라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다가 만들어지는 커뮤니티이다. 커뮤니티의 진짜 힘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단순한 만남 넘어 마주침이 있는 커뮤니티로

코로나19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유튜브를 비롯한 온라인/비대면 콘텐츠의 증가라고 할 수 있다. 초기의 혼란은 사라지고 영상은 점점 세련되고 콘텐츠의 구별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문제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의 차별화가 더 이상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어느 순간 지역문화 콘텐츠는 각각의 개별성이나 특이성보다는 대중들에게 익숙한 것들을 소비하는 쪽으로 집중되면서 영상 조회수에 집중한다. 목표 설정과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자칫하면 지역 커뮤니티의 실종은 가속화될 수도 있다. 개인이나 기관의 성과가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정릉더하기축제'(2021) 공공과 민간의 다양한 네트워크들이 함께 축제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거버넌스형 축제 실험을 하고 있다

정릉더하기축제'(2021) 공공과 민간의 다양한 네트워크들이 함께 축제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거버넌스형 축제 실험을 하고 있다

커뮤니티는 단순한 만남을 넘어 ‘마주침’을 전제로 한다. 마주침은 서로 만나고 발견하고 충돌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그래서 마주침의 과정은 갈등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늘날 부상하는 많은 커뮤니티는 갈등을 부정하거나 삭제한다. 모임의 구성이나 운영은 깔끔하고 효율적이다. 갈등과 충돌이 없는 커뮤니티는 갈등과 화해의 축적물로서 역사를 경험할 수 없다. 매끈한 커뮤니티는 미리 갈등과 충돌을 방지함으로써 공통의 정서와 감각을 경험하는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게 된다.

새로운 로컬 커뮤니티는 장소성을 기반으로 일상의 연결을 통한 상호 결속이라는 ‘공통 감각(common sense)’을 갖기 때문이다. 공통 감각은 개인의 학습이나 경험이나 결과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것은 개인과 개인이 모여 공동체의 학습과 경험, 축적과 결과물로 나타난다. 좋은 커뮤니티는 그 구성원들에게 공통 감각을 선물한다.

그 안에서 개인들은 서로 환대하고 존중한다. 굳이 서로를 제압하지 않더라도 나의 활동이 타자를 통해 부각되고 타자의 활동이 나를 바꾼다. 이와 달리 나쁜 커뮤니티는 구성원들에게 개별 감각을 통해 각자의 성과로 이야기하게 한다. 그 안에서 개인은 경쟁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골목에서, 방치된 빈집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로컬 커뮤니티는 이 사람과 저 사람을 만나게 함으로써 절망 속에서 홀로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기대와 설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작은 광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성북문화재단에서 8년째 일하고 있다. 지역에서 만나는 다양한 '동네친구들'과 잘 지내는 법을 배우면서 삶의 방향을 조율중이다. 호혜와 환대, 공존과 실험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역문화생태계를 구성하는 데 몫을 하고 싶다. 저서로는 <착한 사람들의 나쁜 사회>(생각의힘, 201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