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전환의 시대를 걸어가다

최혜자 ( 문화디자인자리 대표 )


문화예술계 현상, 그 이상
이제 3년째입니다. 한 여름의 기세가 잦아질 때면, 지역 문화예술계는 문화도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국이 문화도시로 “올인(?)”하고 있다고 하니, 이것은 일종의 현상이기도 합니다. ‘분명하게 관찰되는 사실 혹은 사건’이라는 의미에서 문화도시는 하나의 현상이 맞습니다.
그러나 문화도시는 하나의 현상에 머물지 않습니다. 지역문화 정체성을 탐구하고, 문화도시의 방향을 논의하는 등 각 지역마다 문화도시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있으니 현상 그 이상입니다. 그 안에서 지역 문화예술계는 이미 익숙해져 버린 언어들, 일테면 “문화주체”, “문화민주주의” “문화거버넌스” “문화생태계 지속가능성” 등을 실천 언어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는 하나의 현상을 넘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조금 짜게 이야기 한다고 해도 그런 “조짐”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문화도시의 발명
도대체 문화도시는 어디서 왔을까? 사실 이 질문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사람이 살고 지는 모든 것이 “문화”라고 할 때, 우리는 어떠한 문화 속에 살고 있으며, 그렇게 사는 공간은 모두 “문화도시”입니다. 그러니 문화도시를 계획한다는 것은 다소 어색한 말이 됩니다.
우리가 말하는 문화도시는 하나의 발명품입니다. 다시 말해서, 일종의 문화실천 같은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문화도시에 살고 있지만, 그 터전에 뿌리를 내린 주민들이 함께 스스로의 삶을 논의하고 실천하면서 희망을 공유하고, 그 희망이 가능한 터전을 만드는 과정이 문화도시입니다. 주민은 문화주체로, 행정은 문화거버넌스의 파트너로 성장하고, 지역은 새로운 문화예술생태계가, 도시는 새로운 가치와 미래 기반이 구축되는 것, 그 과정이 바로 문화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도시는 “유럽문화수도”를 모델로 참여정부 국가균형발전전략으로 제기되었습니다. 그 후 2004년부터 시작된 <거점형 문화도시사업>, 2014년부터 시작된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을 거치면서, 2018년 <문화도시 조성사업>으로 구체화된 것입니다.


문화도시, 문화도시로서의 가능성, 문화도시 지정
문화도시는 2014년 제정된 「지역문화진흥법」에 근거하는데, 법률에서는 문화도시를 “문화예술·문화산업·관광·전통·역사·영상 등 지역별 특색 있는 문화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문화 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법령에 의해 지정된 도시”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문화도시 심의, 지정, 지정취소, 지원 등의 세부 내용을 명시함으로써 정책 사업으로서 문화도시 절차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도시는 스스로의 가치와 주체, 운영원리와 협력 등의 방향과 실천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화도시는 문화주체를 발굴하고 기존의 부정적인 지역 이슈 극복을 통해 지역 특성과 자원을 해석하고 새로운 도시 가치를 재구성해야 합니다. 또한, 이를 지역사회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사회 발전가능성과 문화도시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동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문화도시의 지정은 “문화도시로의 가능성”을 공감한다는 의미가 더 정확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문화도시로서의 가능성을 구축하는 단계이며, 일부 도시가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받아 그 가능성을 (정책적으로) 인정받은 단계입니다.


문화도시의 끝없는 이야기
2020년 현재 부천, 원주, 포항 등 7개 문화도시가 법정문화도시 1년차를 맞았으며, 13개 예비도시가 법정문화도시 지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업 3년차 신규과정에 많은 지자체가 예비도시 지정을 준비하여 41개 문화도시가 신청을 하였습니다. 해마다 지원하는 지자체가 증가하는 상황입니다.
전국에는 229개의 기초 지자체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60여개의 도시가 문화도시로 등장하여, 기초 지자체의 26.6%가 문화도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직 등장하지 않은 채 준비하고 있는 도시를 포함하면 상당한 수의 도시들이 기존의 개발중심의 하향식 도시를 벗어나 문화민주주의 기반의 문화도시를 꿈꾸고 있습니다.
아직 문화도시는 탄생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문화도시는 최종적이며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문화도시는 탄생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문화도시는 끝없는 이야기(never ending story)처럼 도시에서의 삶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매일 매일 탄생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생산되는 문화도시에 대한 이슈
문화도시가 매일 매일 탄생된다는 것은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사실 문화도시를 꿈꾸는 도시들은 끊임없이 성찰하고 있습니다. 법정 문화도시 1년차를 맞이한 7개 도시들은 추상적 개념이 난무했던 초기 단계에서 구체적인 행위를 만들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내부적인 혼동과 착오, 조직 내 갈등과 협력의 좌절을 겪었고,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활동 방식을 전환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계획을 구체 실천으로 전환하는 가운데 발생한 오류 대처, 단순 주민 참여자를 당사자화하는 과정의 어려움, 민관 협력과 조정의 필요성, 문화도시 위기관리 역량의 중요성 인식 등 법정문화도시들이 고민하고 학습하고 있는 주요 이슈들입니다.
13개 예비문화도시나 3차 문화도시 지원 지자체들 역시 계획을 수정 혹은 설계하는 과정에서의 다양한 이슈를 만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슈는 문화도시 조성계획 단계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정리하고 준비해야 하는 내용입니다.
우선, 주민주체의 문화도시를 지향하고 있지만,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넘어, 주민이 주체화되는 전략 수립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둘째, 문화도시를 도시적 관점에서 계획하기 위해 도시기본계획이나, 지자체 특화된 도시비전과 연계하는데 고심하고 있습니다. 셋째, 일상의 소소한 모임의 중요성과 함께, 민관협력과 협치 등 도시를 움직일 동력과 기반 마련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넷째, 문화를 도시적 영역으로 확대하지만, 정작 전통적인 문화와 새로운 예술과의 관계 설정, 예술가의 자리 설계 등 새로운 예술의 자리에 대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문화도시조성계획> 실행이 만료 될 5년 이후, 진행과정에서 발견되고 성장한 도시의 동력이 도시에 지속가능하게 작동하는 방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위의 내용을 준비하기 위해, 예비도시 과정에서 도시의 미흡한 준비 부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전략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문화도시는 이렇듯, 도시를 들뜨게도 하고, 고민에 빠지게도 합니다. 오늘의 삶과 미래를 준비하는 문화도시는 우리 모두를 기어코 사유하게 하고, 함께 논의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배제와 재난, 그보다 반걸음 먼저 온 문화도시
2020년 전 세계는 코로나19와 기후위기로 인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일상관계의 중요성은 더욱 증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문화적 현상들이 나타나는 시대입니다. 또한, 2017년 이후 우리사회는 갑질 근절, 공정 가치의 중요성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미투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올리고, 과정의 민주성과 성평등 이슈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문화도시는 이러한 문화적 전환과 우리사회의 가치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가치는 문화도시를 실천하는 행동의 원리 속에 자리해야 하며, 이를 위해 갈등에 대한 감동 있는 대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문화적 삶의 확산과 삶이 터전으로서의 도시의 발전을 실천하는 문화도시는 반걸음 먼저 온 미래의 메시지를 읽어내야 합니다. 여성을 위한 도시, 어린이를 위한 도시, 노인을 위한 도시, 나무와 숲이 있는 도시, 쓰레기가 절감된 도시, 빗물을 아끼는 도시……. 결국, 우리가 꿈꾸는 도시를 향한 노력이 문화가 되는 도시가 바로 안전하고 문화적인 삶을 담아내는 문화도시입니다.